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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Psychology

We cannot forget and forgive - why humans are evolved to hold a grudge. 배신을 당한 우리가 원한을 품고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 인간의 원한의 기원은 무엇인가.

by Editor in Chief 2021. 4. 24.

For the Love of the Grudge: Why We Can't Forgive or Forget
Origins of the 100,000-year-old grudge.

배신을 당한 우리가 원한을 품고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
인간의 원한의 기원은 무엇인가.

인간들은 자신에게 모욕을 준 사람, 자신을 배신 한 사람들에게 원한을 품고

이를 한 평생 잊지 못하기도 한다. 소셜 미디어에는 배신을 당한 썰들을 풀어놓고

사람들이 이를 공감해주고 같이 분노해주며 자신의 처지를 공감해주길 바란다.

 

그러나 풀지 못한 원한은 거꾸로 엉뚱한 사람들에게 적개심과 분노를 향하게 하기도 하는데,

이는 또한 심장병이나 여러 스트레스에 관련된 질병과 관련이 있다.


10만년 전에도 고대의 인간들은 원한이란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잊지 못하고 자신의 적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은 오히려 인구 개체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역할을 했다. 용서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가장 큰 복수라는 격언은 여러 세대에 걸쳐 전해 내려온 클리셰이다. 

그러나 이는 들리는 만큼 쉽지 않으며,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만한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려는 원한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풀 수 없는 숙제이다.

 

Easier said than done.


누구는 30여 년이 지나도 국민학교 때 자신을 욕하고 놀려대며 쉬는 시간마다 괴롭혔던 아이들을 용서하거나 잊지 못하고 있다. 아니면 백인이 주류인 마을에서 무심코 인종 차별적인 발언들을 하면서 동양인들을 비웃었던 한 쌍의 노인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정말 믿었던 좋은 친구가 중요한 행사에 오겠다고 약속했지만 별다른 이유 없이 나타나지 않은 적도 있다. 이 후 다시는 그 우정을 돌이킬 수 없었다. 

 

이는 어쩌면 간과할 수 있는 사소한 일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때때로 이런 기억들이 되살아나면서, 이에 동반된 분노는 여전히 예전 그 당시처럼 생생하고 치가 떨릴 수도 있다. 더 확실한 방법으로 자신을 속이고 헐뜯고 배신한 사람들에게 돌려줄 수만 있다면, 이에 대해 얼마나 희열을 느낄까?

 

아마 자신은 원한을 품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두의 도덕성은 다르기에, 수많은 원한을 품고 살면서도 어쩌면 자신 또한 남에게 똑같은 짓을 하고 살았던 사람일 것이다. 한 여성은 친한 지인이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남성과 사귀면서 그녀와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진 적도 있었다. 그녀의 지인은 여전히 그녀를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10년의 침묵 이 후에 그 사건은 분노에 찬 페이스북 포스팅으로 이어졌다. 그녀의 지인은 지구상에서 그녀를 가장 나쁜 여자라고 확신했다. 

분명한 것은 과거는 왜곡될 수 있지만, 잊혀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원한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를 향한 분노와 같다.

타인을 향한 불만은 적개심, 분노를 낳으며, 육체적 질병도 동반한다.

과학 연구는 부정적인 감정들은 우리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과 행복을 해친다고 말합니다. 마크 브래킷 예일대 교수는 '불안, 분노, 슬픔 등 스트레스로 비롯된 감정 들이 잘못된 식생활, 흡연, 음주, 약물 중독 신체 비활동, 사회적 고립 등 건강하지 못한 행동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며 스트레스는 심장병, 암, 당뇨, 약물 중독, 치매로 이어질 수 있는 요인이라고 믿는다. 특히 적개심과 분노는 심장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가장 높은 수준의 분노를 보고한 남성은 다른 남성보다 심장질환에 걸릴 확률이 2.5배 높았다"고 지적했다.

부정적인 감정이 이롭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데에는 사람들의 이견이 없지만, 이러한 원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원한이라는 감정을 풀지 않는다. 우리가 앙심을 품도록 배운 것일까 아니면 인간이 그렇게 진화된 것일까?

적어도 10만년이 된 원한의 기원

요크 대학의 고고학자 페니 스파이킨스 박사는 초기 인류의 원한을 품는 능력이 인구의 확산과 성장을 촉진시켜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의 지식 세계를 만들어내었다고 말한다.

초기 인류는 매우 느리게 이주했고 환경의 장벽이 많았다. 하지만 적어도 10만년 전에 그녀는 인간의 사회 관계 속으로 룰이 강하게 바뀌었다고 설명한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 서로에게 더 의존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또한 그들을 배신한 사람들을 확인하고 처벌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결국, 이러한 "부실된 양심, 도덕성, 그리고 이를 향한 배신감에 의해 동기 부여된 도덕에 관한 논쟁"이 훨씬 더 빈번해졌고, 초기 인간들이 그들과 적들 사이와의 거리를 두도록 동기를 부여했다.

만약 한 무리의 인간들이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도망치려는 강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고, 상대방은 복수를 하기 위해, 후자는 이를 피하기 위해 많은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고 스파이킨스는 말한다.

개개인들은 먼 곳에 있는 새로운 동맹을 찾아 예전의 공동체를 떠날 것이다. 많은 선택권이 없었던, 한때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초원과 개방된 삼림지대에서 살았었던 초창기의 인간들은 더 "멀고 위험하며 살기 힘든 지역"으로 북유럽이나 바다를 건너 호주와 태평양 섬으로 이주해야만 했다.

스파이킨스의 연구는 분노가 어떻게 사회성을 발전시키고, 세계 인구를 증가시키고, 우리의 생존에 필수적인 진화적 특성을 배양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지 보여준다. 

왜 원한이 푸는 것은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들까? 왜 많은 사람들이 이 복잡한 감정을 공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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